호스피스돌봄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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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웹관리자 댓글 0건 조회수 2,915회 등록일 2022.12.23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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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2023-03-03,100%,온라인수시개강,(스마트폰 수강 가능) 




삼육보건대 사이버지식교육원 

https://hrd.shu.ac.kr - 수강신청(회원가입) 


문의 ☏1661-3642 호스피스 돌봄 관리자 직접 바로 

회원가입 신청 후 교육 선택 및 수강 신청 / 2023년 3월 OPEN 하였습니다.




수강료 : 본인부담 \100,000원



수강대상 : 지역교회 평신도 및 목회자 및 선교부 임원 必

※ 과정이수자 총장 명의의 수료증만 발행 + 자격증 발급되지 않습니다. 


호스피스 돌봄 관리자 양성과정을 

삼육보건대학교 사이버지식교육원에 위탁, 개설

각 가정과 지역교회, 그리고 호스피스병동에서 자원봉사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


- 호스피스는 말기환자와 임종환자 그리고 그 가족을 돌보고 지지합니다. 

  환자가 회복이 곤란한 고통의 과정을 겪는 동안 가족도 함께 그 모든 과정을 

  겪으며 아픔을 함께 하게 되므로 가족에 예측되는 상실과 슬픔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즉, 호스피스 돌봄의 대상은 환자와 그 가족입니다.


- 그들의 남을 생을 가능한 한 편안하게 하고 충만된 삶을 살도록 도와줍니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성찰과 남은 시간을 온전히 가족과 함께 나눌 수 있는 희망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 통증이 잘 조절될 때 암환자들은 자신이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기도 합니다. 

  호스피스는 통증, 구역/구토, 식욕부진 등의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합니다.


- 호스피스는 삶을 연장시키거나 단축시키지 않으며 남은 생을 충만하고 풍요로운 것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 호스피스는 환자와 가족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가능한 모든 자원을 이용하여 

   신체적, 사회적, 심리적, 영적 요구를 충족시키며 지지하여 죽음을 준비하도록 돕습니다.



호스피스(Hospice)는 돌봄(care)의 종류이다. 

역사적으로, 병원도 호스피스와 마찬가지로 병원의 의미 뿐만 아니라 고아원, 양로원, 길가의 

쓰러진 사람들을 수용하는 시설 전반을 일컫는 말이었다. 교회에서 간호를 맡는 성직자의 헌신과 환대를 ‘호스피탤러티’(Hospitality)라고 불렀는데

이 단어에서 오늘날 병원을 일컫는 용어인 Hospital이 나왔다. 호스피스의 도입은 종종 환자와 가족에게 나쁜 소식으로 인식됩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감안할 때 호스피스 논의가 질병 과정에서 매우 늦게 일어나고 대부분의 환자가 짧은 기간 동안 만 호스피스 치료를 받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호스피스는 만성적이거나, 말기이거나, 심각한 질병을 앓는 환자의 고통과 증상의 완화에 중점을 두고 환자의 감정적, 영적 

필요에 주의를 기울이는 돌봄의 철학이다. 호스피스 돌봄에서 주된 후견인들은 가족 간호자(family care giver)와 정기적으로 들르는 호스피스 간호사이다. 

호스피스는 요양원, 호스피스 건물, 또는 때때로 병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지만 주로 흔히 집에서 행해진다. 호스피스 돌봄 대상자로 고려되기 위해서는

 말기 환자이거나 6개월 안에 죽음이 예상되어야 한다.



세계 호스피스 및 완화치료의 날

2006년부터 세계 호스피스 및 완화치료의 날은 Worldwids Palliative Care Alliance의 위원회에 의해 

조직되었다. Worldwide Palliative Care Alliance는 전세계적인 호스피스와 완화치료의 발전을 지원하는 

호스피스와 완화치료의 국가적, 지역적 조직들의 연결망(network)이다. 이 날은 매년 10월의 둘 째주 토요일이다.


  



종 又 시 (終 又 始)


돌  돌아볼 수 있는 여유

봄  봄이 올 수 있는 이유 



우리는 해 마다 어김없이 마지막 달을 맞이하게 된다. 

그 마지막에 우리는 더불어서 한 해의 끝, 인생의 끝, 세상의 끝을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그 너머로 희망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십계명은 창조주가 인간에게 내려 준 법이다. 그리고 법은 삶의 모형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인생과 사회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한다. 즉 법은  심판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인생은 심판에 대해 두려움과 회피의 마음을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심판 이후에 더 멋진 세계가 있다면? 옛 것을 털어 버리고 새 날을 시작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상황은 변한다.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인간이 살아가면서 결정하고 선택하는 일이 많지만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것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 이름하여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네 가지 중에서 첫째인 태어나는 것은 모두 기뻐하는 일이지만 나머지 세 가지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을 기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사건, 삶에 종지부 곧 마침표를 찍는 일은 옷깃을 여미게 하는 엄숙한 사건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달에 인생을 마감하는 죽음의 순간들을 생각해 보는 일은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2001년 911테러,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테러 공격으로 갑자기 무너졌을 때, 그 빌딩에 갇혀서 죽기 전에 전화로 남긴 말들이나 테러리스트에게 탈취당한 비행기 안에 갇혀 추락하기 전 승객들의 전화 통화 내용들에 나타난 바와 같이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들 대부분은 사랑하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에 대한 감사더 사랑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 그리고 마지막으로 변치 않는 사랑을 확인하는 말들을 남긴다.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과는 달리 말기 암 등 중증 환자들은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길기 때문에 더 많이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불타는 지하철이나 무너지는 빌딩 그리고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 갇힌 사람들은 전화로 자기의 감정과 생각을 알리는 일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지만 병실에 누워 있는 임종이 가까운 환자들은 가족들과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미진했던 부분을 만회하는 수순을 밟을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 가운데서도 대형 교통사고나 비행기 사고 또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한 마디 유언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망하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사고사가 아니라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즉사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통증과 고통 없이 죽으니 다행이라고 역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대부분의 사람이 암이나 중증 질환을 기피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곰곰이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 보면서 사과할 사람에게 사과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확인하고 못 다한 일들을 부탁할 수 있으니 최악의 상황만은 아닌 듯하다. 심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암 같은 중증질환을 진단받으면 우선 그것을 부정하려는 마음이 든다고 한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그것은 아마 오진일거야. 내가 그런 병에 걸릴 리가 없지.”하고 부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되는 객관적인 증거에 압도되어 진단을 믿게 되면서 “왜 하필 나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건 너무 불공평해. 옆집 ○○ 씨는 나보다 훨씬 비건강적으로 사는데….” 하며 분노를 표출한다. 그러나 그렇게 화를 내고 화풀이를 해도 자기 몸에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차차 깨달으면서 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먹고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서 타협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 절망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운명 또는 불가항력으로 알고 수용하게 된다고 한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ubler Ross)는 인간이 상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이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말하였다.  모든 이별과 상실에서 이 단계를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순서가 달라질 수도, 단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슬픔을 극복한다고 한다.  생을 마무리하는 순간,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가족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신앙심이 깊은 종교인은 신에 대한 생각을 더 먼저 더 많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의 끝에서 아무도 그에게 얼마나 많은 학위를 받았는지,  얼마나 큰 집에 사는지, 얼마나 비싼 고급차를 굴리는지 묻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누구인가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대부분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 고 말한다. 인생은 순례자요, 단 한 번 지나가는 이곳에서 지금 이 순간 즐겁고  충실하게 살면서 가까운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좋은 추억을 더 많이 남겨 놓고 가지 못하는 게 장 아쉽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와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케슬러는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 명을 인터뷰하여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 을 받아 적었다.  죽음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삶’즉 기회,  아름다움,  놀이로서의 삶 이다. 우리는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서양 사람들은 중년만 되어도 유서를 쓰라고 권한다. 재정적인 정리를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후회할 일이 없도록 미리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일에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사람은 죽은 뒤 어떻게 되며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까운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과의 관계는 만족할 만한가, 소홀한 점은 없었는가, 용서해 주고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은 없는가, 고마운 마음은 있으나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한 사람은 없는가, 마지막으로 나는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조상들과 그 조상의 조상인 창조주 하나님께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